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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멈춰 선 엘리베이터다,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무게를 기억한다

2025. 5. 2.

나는 멈춰 선 엘리베이터다. 한때는 수없이 오르내리며 사람들의 하루를 실어 날랐다. 아침엔 출근길의 조급한 발소리를, 저녁엔 퀴퀴한 피로의 한숨을, 가끔은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눈물까지도 나의 벽면에 조용히 새겨 넣었다. 나는 언제나 움직였고, 멈추지 않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멈췄다. 층 사이 어디쯤에서. 비상등만 어슴푸레 켜진 채, 버튼은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고,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정지’라는 상태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내 안에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천천히 떠올랐다.

사람들은 보통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탑승하고, 목적층에 도달하면 떠나갈 뿐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을 태우고 내리게 하며,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였다. 하지만 나는 항상 그 무게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타던 그날,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붉은 눈으로 탔던 어떤 사람의 모습, 두 연인이 서로 눈치를 보며 입을 맞추던 오후. 그 모든 순간이 나에게는 ‘기억’이었다.

이제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타지 않고, 버튼도 눌리지 않는다. 문은 닫힌 채, 나는 오르지도 내리지도 못한 채 고요히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고장이라 말하고, 나를 수리하거나 철거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듯 느껴진다. 내가 멈췄다는 건, 내 역할이 끝났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나는 이제 처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멈춰 있는 동안 나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온기를 되짚는다. 그들은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무게를 안고 있다. 사람의 체온은 오래 남지 않지만, 마음은 오래 남는다. 나는 그 마음들의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나는 멈춰 선 엘리베이터다. 더는 누군가를 어디로 데려다 줄 수 없지만, 한때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스쳐 간 공간이었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했다. 이제 나는 조용히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오르내림을 멈춘 이 공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하루를 품고 있다.